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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20 백두산 그들의 복귀를 즈음하여.. 과연 왕의 귀환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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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그들의 복귀를 즈음하여..


과연 왕의 귀환인가..

백두산은 대한민국 록음악계 그것도 헤비메틀계에서는 빼놓을수 없는 밴드다..

그들이 1집을 내놓았던 86년의 대한민국은 나의 기억이 맞다면 김범용-바람바람바람, 이재성-촛불잔치

등의 음악이 가요톱텐 1위를 달리던 시기였다..

그 곡들을 폄훼하는것은 절대 아니다.. 그시기에 1위하던 음악이 그거 였다는거다..

국내에서 록이나 밴드음악이라고는 송골매, 산울림, 작은별 가족이 전부인줄 알았다..

아니면 '마상원과 그 악단' 이 최고의 밴드인줄 알았을때다.. (내 기준에서..)

어쨌든 그런 시절에 선구적으로 록 음악도 아니고 헤비메틀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앨범을 내놓으며 군바리 깡패정권 치하의 억눌린 젊은이들의 타오르는 열정을 배출할 구멍을 찾게 해주었다..



알아듣기조차 힘든 영어로 노래하는 레드제플린, 딥퍼플, 블랙사바스, 주다스 프리스트, 이글스등의 음악을 듣던

이나라의 젊고 억눌려  터지기 일보직전의 임계점에 다다르던 록키드(rock kid)젊은이들은

한국의 헤비메틀 밴드에 열광했고 백두산과 유현상은 한국 헤비메틀의 선봉장이자 왕

(백두산의 2집 앨범 제목인 King of Rock N Roll 처럼)이 되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끝없는 연쇄 폭발을 일으킬것만 같았던 한국의 헤비메틀은 거기서 끝이었다..

끝이라고 하기엔 너무 간단 명료하지만 거기서 쉽게 작은 불꽃으로 사그라들고 말았다..



작은하늘, 시나위를 거치며 한국의 로버트 플랜트라는 별명을 얻던 김종서는

1992년 '대답없는 너' 라는 가요를 발표하며 성공적으로 가요계로 발길을 돌렸고


역시 시나위에서 굵고 힘찬 목소리로 한국에도 이런 보컬이 있다는걸 알리며

영원한 로커로 남겠다며 팔뚝에 커다란 문신까지 새겨넣었던(문신은 요즘도 그렇지만 방송 출연에 제제가 심하다)

임재범도 김종서 보다 1년 앞서 '이밤이 지나면'이라는 곡으로 가창력 있는 가수로 나름 성공적 데뷔를 하며

록계에 발걸음을 돌렸다.. (이밤이 지나면은 후에 Paul Young 의 Every time you go away의 표절로 판명)


아발란쉬와 조인트 앨범을 내며 주목을 받았던 크라티아의 보컬 최민수(배우 최민수와 동명이인)역시도

90년대 초반이 되며 밴드와 결별을 고하고 가수로 데뷔하며 잠시 조용했으나

'의미없는 시간' 이라는 트렌디한 곡으로 한순간의 히트를 기록하며 지금까지 근황을 잘 모르겠는

가수가 되었다..



그러나 가장큰 충격을 주었던 사람은 한국 메틀의 원조라고 불리워도 크게 반박을 할 사람이 없을듯한

백두산의 리더이자 보컬이던 유현상의 "여자야" (1991년, 현대음향)앨범발표가 아닐까..

당시만 해도 메틀이나 록음악을 즐기거나 연주하던 사람들은 가요를 아주 폄하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짙었다..

더구나 보통의 가요도 아니고 트로트였으니 유현상과 백두산, 헤비메틀을 좋아하던 수 많은 팬들은

경악을 했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롭 헬포드가 주다스와 결별하고 프랭크 시나트라 류의 음악이나

존덴버 류의 음악을 한다고 해도 이렇게 경악스럽진 않았을텐데..

여하튼 그랬다..



한국에서 록의 태동기에 헤비메틀의 출범기에 커다란 획을 그었으며 노란피부의 보컬도 외국보컬에

뒤지지 않는 가창력과 무대매너, 폭발력을 지녔다는것을 보여주던 수많은 록 뮤지션들과 보컬들이

가요계로 흡수되어가며 국내 록계는 다시 황폐화의 길을 걸었다..

물론 세계를 휩쓸던 록/메틀 음악이 주류에서 서서히 밀려나는 경향도 있었지만..



김종서가, 임재범이, 최민수(배우아님)가,

특히, 나이도 가장 많았고 비주얼적면도 앞선이들에 비해가장 떨어지던

유현상이 과연 록/메틀 밴드로서의 경험과 경력을 전면에 앞세우며 데뷔 하지 않았다면

당시에 그렇게 주목받고 성공할수 있었을까..



막말을 좀 하자면 저들은 한국 록/메틀의 태동기에 단물만을 빼먹고 단물이 사라지자

가요로 발길을 돌렸다.. 비록 그 단물이 통장에 잔고가 쌓이는 돈이 아닌 허상과 같은 인기뿐이었더라도..


특히나 선구자였던 유현상의 '여자야' 발표는 엄청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발길을 돌렸던 유현상이 백두산 재결성을 하며

'왕의 귀환'이라는 앨범 타이틀을 걸기엔 남부끄러운 모습이 아닐까..


백두산의 음악적 리더는 꾸준히 활발한 연주 활동을 보여주었던 김도균이니

'왕의 귀환'도 남부끄럽지 않다는 말은 하지말자..

어디까지나 외적으로 보이는 백두산은 유현상의 백두산이지 김도균의 백두산이 아니다..

김도균은 백두산의 김도균일뿐..


그 모든게 유현상의 영향이라고 말할수는 없겠지만 유현상과 백두산을 보며 록/메틀 뮤지션을 꿈꾸던  

연주자와 보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룸살롱으로 , 나이트 밴드로, 또는 사회속의 직장인으로

사라져갔고 스러져 갔다..

그들가운데 남들보다 열심히 했고 능력이 있던 사람들은 뮤지션이라는 이름으로 작곡가라는 이름으로

가요계에 편입되어가며 성공적 삶은 여전히 영위하고 있지만 80년대 백두산의 폭발력만큼을 지닌

헤비메틀 밴드로 성장한 팀은 단 한팀도 없다..

사실 당시 백두산도 경제적으로는 전혀 성공하지 못한 밴드였다고 알고 있지만..



어찌되었건 유현상은 헤비메틀의 초대 왕좌에 등극한 왕이었음을 부정할 생각도 없고 나말고도

부정할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내팽개쳤던 헤비메틀 Nation 과 그 백성(Listener)들에게

이렇게 생뚱맞게 재 등장하며 '왕이 돌아왔다' 라고 외치는 모습을

오롯하게 보아 주기는 록뮤지션을 꿈꾸었던 후배의 입장에서 록 음악을 사랑하는 '백성'의 입장에서

쉽지많은 않다..
Posted by 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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